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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외로운 30년 투쟁,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 별세

기사승인 2024.05.25  1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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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경영 원칙의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30년간 지난한 투쟁을 해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이 지난 1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투쟁으로 청춘을 보냈다.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을 쩌렁쩌렁 울렸던 김 위원장은 건강을 돌볼 새 없이 투쟁에 전념하다 수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암 진단까지 받아 삼성과 투쟁은 물론 병마와도 싸워야 했다.

   
삼성의 노조파괴에 맞서 30여년간 삼성과 총수 이재용 회장에 대해 투쟁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이 2019년 4월 설립된 삼성SDI울산공장노조가 어용노조라며 규탄하는 규탄성명서를 발표하고 한국노총 게시판에 포승줄에 묶인 이재용 회장의 사진과 삼성SDI 노조건설추진위원회 깃발의 사진을 게시한 모습. 

김 위원장의 소식은 극히 일부 매체에만 전해져 세상 사람들은 그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계의 양대 줄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하지 않으면서 나홀로 힘든 싸움을 해왔지만 마지막까지 자본에 굴복하지 않은 강고한 투쟁의지는 노동계에 본보기가 됐다.

그가 노동운동의 길을 처음 걸은 것은 1993년.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이던 이천전기에 입사해 노조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다 1996년 회사가 삼성전자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해고 당했다. 

해고 반대 투쟁에 나선 김 위원장은 2000년에 다른 삼성 해고자들과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를 결성했고, 2003년에는 삼성일반노조를 설립했다.

삼성일반노조는 무노조 경영원칙을 고수해온 삼성에 맞서 2010년대까지 그룹 차원에서 치밀하고 교묘하게 짜여진 노조 무력화를 위한 회유와 탄압에 맞서 삼성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노조의 정신을 지켜냈다.

삼성이란 회사 외에 삼성의 이익을 앞세운 어용노조와의 싸움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삼성재벌 삼성SDI 울산노동조합 창립총회 사기극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삼성에 민주노조를 세우는 것을 소원하며 투쟁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이 2012년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발행 '사람과 정책' 봄호에 게재된 '삼성에 필요한 것은 민주노조'라는 제목의 글.

김 위원장은 2020년 4월에는 삼성SDI울산노동조합 노조창립총회도 블라인드 창립총회냐며 어용노조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삼성일반노조는 그해 4월7일 삼성SDI 어용노조 건설과 한국노총가입 공작 -규탄성명서! 내용이 사실임이 드러났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삼성일반노조는 "4월8일 삼성SDI울산노동조합 창립총회 관련 내막과 창립총회 증거사진이 없는 언론 기사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라면서 "삼성SDI 울산노동조합이 건설되어 한국노총에 가입했다는 언론기사는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노총에 가입했다는 사실만 앵무새처럼 기사화했지 창립총회 본질과 관련한 기사나 창립총회를 증거하는 변변한 사진 한 장이 제대로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삼성무노조 폐지 이재용 직접 사과 권고안에 대해 이재용이 삼성 무노조가 끝났다는 명분과 증거를 만들어 주기 위해 삼성그룹은 공작차원에서 프락치들을 이용해 삼성SDI프락치 어용노동조합 창립총회와 한국노총 가입을 획책했다.

2019년 4월 삼성 노조파괴 공작과 관련된 삼성노조파괴문건이 폭로돼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삼성은 2019년 4월1일 삼성SDI 울산공장 ‘프락치유령노조’를 만들었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에서 활동하던 지도부가 변절해 이재용 회장의 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의 들러리를 서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SDI울산공장 프락치 어용노조 역사는 이종기의 부끄러운 배신과 변절의 역사다"라고 비판하면서 양대노총과 거리가 멀어졌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전방위적인 정관계 로비를 드러낸 '삼성 X파일'·'떡값 검사' 사건(2005년), 삼성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2007년), 삼성의 태안기름유출 사고(2007년),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건(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의혹 동영상 뉴스타파 보도(2016년) 등 큼직큼직한 이슈에도 침묵하지 않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노조가 임금이나 단체협약에 매몰돼 임단협이 마무리되면 투쟁이 종료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김 위원장의 시야는 노조의 울타리를 넘어 재벌의 폐해를 비판하는데도 앞장섰다.

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 현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산재를 입은 삼성 노동자들의 소규모 싸움에도 언제나 그가 있었다.

삼성의 힘에 노조 존립조차 위기에 몰린 초보 노조원들은 김 위원장을 찾았고 김 위원장은 늘 그들의 울타리가 되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 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2002년)를 펴내고 삼성의 불법 휴대전화 위치추적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1인 시위로 인한 업무방해 등으로 2005년 2월 구속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수감중이던 2007년 2월, 국제앰네스티에서 '양심수'로 선정됐다. 

2007년 11월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전태일노동상' 수상자로 선정돼 옥중 수상했다. 결국 그는 형기를 6개월 앞둔 2007년 12월 특별사면돼 풀려났다.

국제사회에서는 김 위원장을 인정했지만 삼성과의 거리는 그만큼 더 멀어졌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는 홀로 남겨지길 반복했다. 삼성은 새로이 생겨난 노조원들에 대해서는 회유와 합의를 통해 삼성일반노조의 세 확대를 저지해 김 위원장의 주위를 고립시켜왔다.

삼성전자에 노조가 생겨나지만 상급단체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선택하면서 김 위원장은 양대노총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김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5월 국정농단 뇌물죄 등으로 구속 위기에 처하자 구속을 면하기 위해 선언적이나마 경영권 승계·노조 탄압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를 끌어냈다.

무노조 경영 포기라는 노동운동의 한 획을 그은 김 위원장은 댓가없는 투쟁의 장을 마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2일 경기도 부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갖고 먼 길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길에는 가족들 등 10여명이 겨우 운구 행렬을 이뤘다.

생전 외로운 싸움을 한 것처럼 마지막 길도 쓸쓸했다.

삼성은 김 위원장의 장례식에 아무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유족 측에도 아무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22일 인천 가족공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위원장의 배우자 임경옥 씨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살다 죽는다. 모두 한번 겪는 일이라 그렇게 대단하진 않지만, 요즘은 장수하는 세상이라 60대 중반에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는 게 안타깝다. 특히 최근 보름 정도는 정말 고통스러워 했다. 뇌경색으로 2년을 굉장히 고생하다 마지막 서너달 동안엔 간암이 발병해 급격히퍼졌다. 끝간 데 없는 고통을 지켜보는 게 마음 아팠다"고 오마이뉴스에 심경을 밝혔다.  

임씨는 "한눈 팔지 않았다. 20대 때 노동 운동하겠다며 세운 뜻 그대로 다른 일에 눈 돌리지 않고, 진실된마음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있었고 자식도 셋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곧게 자신의 한 생을 살았다. 그래서, 제 남편이지만, 참 드문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과 힘겨운 싸움에 대해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임씨는 "힘들지 않은 싸움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만 다른 재벌과 달리 삼성이라는괴물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특별한 힘은 있었다. 삼성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뭔가를 고안하면, 그걸 사법부에서 받아 안고, 그럼 다른 재벌들이 따라 한다. 그리고 이런 패턴들이 그 아래 중소기업이나 전 사회에 파장을 미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외로운 투쟁, 노동계에 대해 느꼈던 소회는 임씨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임씨는 오마이뉴스에 "사실 남편을 심적으로 더 힘들게 한 건 '골리앗'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였던 것 같다.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운 투쟁을 해야 했다. 그래도 '삼성 노조'로 가는 길에 씨앗은 뿌렸다고 본다. 미미하지만, 변화의 첫걸음이 지금 있고, 그게 쌓이면 우리가 못했던 일들이 이뤄질 것이다. 뒷세대들에게 희망을 갖는다"고 했다. 

이번 장례 때 삼성 쪽에서 연락이 전혀 없었다는 임씨는 생계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1996년에 부당하게 해고된 후 한번도 돈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 그때 우리 막내가 세살이었다. 내가 우유 배달도 하고, 김밥집에서 야간에 일도 하고. 건강식품 판매도 하고, 책도 팔고, 정수기도 팔고. 주로 그런 일을 많이 했다. 어린 애들을 봐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했다. 빚도 많이 냈고 월세도 많이 전전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김성환씨... 마지막에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일... 곁눈질 안 하고, 끝까지그렇게 올곧게, 쭉 이어간 것에 대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참, 세상에 드문 사람입니다. 잘… 가세요."(임경옥.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뉴스플러스 press1@news-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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