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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최선웅 선생 "그곳에서 평화로운 국가 건설과 민족 자존 수호,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 발견"

기사승인 2020.07.10  15: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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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와 판문점선언 등 세차m나 남북정상이 만나며 70년 분단사에서 꿈결같은 한해를 보냈지만 이후 문재인 정권의 판문점선언 불이행으로 2년 만에 금강산관광지구 남측시설 철거를 통보하고 급기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최악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책무와 시대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분투하며 살아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본지는 그러한 분들을 모시고 대담을 하는 자리를 마련해 한 달에 한차례씩 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우선 첫번째로 한평생 통일운동을 해 오신 최선웅 선생님과 대담을 진행했다.
 
선생은 1942년 3월 25일 생으로 15세부터 혁명가로 살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통일운동의 한 길을 걸어오셨다. 두 차례에 걸쳐 21년간 옥고를 치루셨고 『해뜨면 돌아가리라』 『천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통일열차가 출발합니다』 등 여러 책을 출간한 작가이시기도 하다.
 
대담은 최선웅 선생이 고령으로 귀가 어두운 관계로 미리 준비한 질문을 건네고 답변을 받은 부분을 글로 옮겼다, 질문 문항은 20여개로 대담자인 노세극 위원이 준비했다. 선생님과의 대담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최근에 이사를 하였는데 한번은 이사 가기 전 집에서 다른 한번은 이사한 반포동 집에서 했다. 두 번째는 이철원 편집국장도 배석했다. 선생님의 지난한 삶과 투쟁 과정에 대한 부분은 물론 인생과 세계에 대한 관점과 철학 그리고 통일 조국에 대한 비전 등에 대한 선생님의 오랜 성찰에서 우러나온 사상적 편린을 전달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편견 없이 봐주시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바랄나위 없겠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을 바란다..<편집자 주]
 
▲먼저 선생님의 최근 상황과 건강에 대해 어떠신 지 ?. 선생님은 LH 공사가 마련해 준 전세 겸 월세주택에 살고 계셨는데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최근에 이사를 하였다. 대출을 더 받아 인근 반포동에 있는 반지하방에 전세로 갈 수 있었다. 이사를 하는 과정에 선생님의 고충이 컸다. 주거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혁명가로 통일운동가로 출발 하면서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가정 모두가 영구 임대주택을 무상으로 배당 받을 때까지 내 집을 갖지 않겠다. 

현재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최소한의 생활비가 나오는데 주택공사에서 6천 650만원을 내고 본인이 3 50만원을 보태 7천만원으로 주택공사와 집 주인이 계약을 했다. 현재 거주하는 서초구 반포동의 작은 방 한 칸이 7천만원 보증금에 월세 20만원 관리비 5만원 주택공사 6천650만원에 대한 이자 11만원까지 무조건 송금해야 되며 광열비까지 납부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2020년 7월 11일이면 전세 계약이 만료가 되는데 집주인은 그 전에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경기도 쪽으로 전세로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알아보았다. 그러던 차에 사회복지사로 방문해주시는 분이 사정을 알고 많은 도움을 주어 인근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LH공사에서 더 대출을 해주어 9,000만원짜리 전세로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건강은 좋지 않다. 올해 나이가 80인데 1968년 중앙정보부 대공 분실에서 받은 고문과 21년의 감옥살이 후유증으로 늘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 선생님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 과정을 알고 싶은데. 어디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자라셨는지요?
 
=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신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나는 음력으로 1940년 12월 11일 새벽 5시~7시 사이에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첫째는 딸을 낳으셨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출산했는데 3일 만에 죽었다고 한다. 

내가 셋째인데 상당한 난산일 때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간밤에 선명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단천 산신령 이라는 노인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오늘 아침에 아랫집에서 아들이 태어나겠는데 곧 죽겠구나. 그렇게 말하기에 먼저번에도 아기가 태어났지만 3일을 못 살고 죽었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새댁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살릴 방도를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애원했더니 산신령 말이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네가 해야 한다면서 출산할 때 탯줄을 이빨로 끊으면 혹시 모르겠구나 했다고 한다. 너무도 생시와 같은 꿈을 꾸었는데 그 때 아기가 나왔고 아주머니가 탯줄을 이빨로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 날이 흥남에서 큰 한약방을 하던 한의사인 최경룡 할아버지의 생일날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여럿이지만 자기의 생일에 손자가 태어났다고 기뻐했는데 다음날 단천에서 아기가 죽어간다는 전보가 오자 곧바로 기차를 타고 단천으로 가서 핏덩이를 가슴에 품고 흥남으로 데려온 다음 한약방에서 할아버지가 돌보며 좋은 약을 많이 먹인 덕분인지 아기가 무럭무럭 자랐다고 한다.

▲우선 통일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여쭈어 보겠다. 선생님께서 통일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 중학교 2학년 5월 달에 월사금 3개월 미납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학교에는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산 자갈치 마른 멸치 상회 골목에서 250킬로그램짜리 멸치 묶음을 열 개씩 실어 나르는 대형 리어카의 뒤를 밀어주는 조수 역할을 하게 된다. 오전에는 영도에 있는 지하 저장고에서 멸치를 들어 올린 다음 그것을 싣고 자갈치 멸치상회 창고에 옮긴 후 곧바로 부산역 부산진역 범일동과 부전동 상점에 배달, 발송했다. 

오후 3시쯤 일이 끝나고 조금 한가해지면 리어카 위에 앉아 책을 읽었으며 내가 자갈치에서 노동을 하더라는 소문을 들은 학우들이 찾아와 그날 그날 배운 교과목을 설명하다보니 리어카 골목에서 얘기꺼리가 되었다. 그곳에서 원산 아바이라는 분이 내 리어카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분이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였다. 그분은 내가 인생의 좌표를 정하는데 결정적인 얘기를 많이 들려줬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너는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묻길래 “저는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을 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시키는 정치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작은집이라도 한 채씩을 무상으로 나누어주고 싶다” 

“ 그러하냐?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것이란다”하기에 “그렇다면 사회주의 정치가가 되겠다”

“네가 말하는 너의 목표는 혁명가가 되겠다는 것과 같다. 혁명가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품성이 있는데 정직, 성실, 겸손이다. 혁명가로 출발하기로 결심한 날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죽어도 좋다는 마음의 유서를 써야한다"

능력이 부족해 큰 공을 세우지 못할지라도 배신, 변절을 해서는 안 되고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야 되며 매사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이런 품성과 굳은 결심이 없이는 못하는 일이다. 내가 혁명가로 출발 할 때의 시대적 목표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이었다. 너희들 시대의 목표는 무엇이겠는가? 갈라진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과학, 문화 국가, 민족의 자존심을 굳건히 세울 조국을 건설한 다음 세계의 평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너희들 세대가 꼭 해야 될 일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 진정한 혁명가다“

   
 

나는 원산 아바이의 피 맺힌 절규를 들은 다음 여러 가지 막연하게 생각 했던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혁명가가 되기로 굳게 결심 했다.
 
▲ 선생님의 통일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그리고 통일은 왜 해야 하는지요? 통일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 우리나라는 주위에 강대국 밖에 없어요. 대륙으로 가려니 중국과 러시아, 바다로 나가자니 일본이 가로막고 있어요.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으려면 당연히 통일해야 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과학, 문화국가를 세워야 한다.

자기들의 국가 이익을 위해 남이 갈라놓은 분단선을 하루 빨리 없앤 다음 평화로운 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만이 민족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선생님이 경험하고 바라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 내가 평양에서 7개월 동안 머물 때 공장, 농촌, 어촌 등 많은 곳을 견학하면서 느낀 것은 자기들 힘으로 평등,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확고하게 지켜 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봤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민족의 장래는 찬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 나는 그곳에서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발견했다. 
 
▲ 우리는 어떤 통일을 해야 하는지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통일에 대한 상과 방식은 무엇인지요?

= 일본에서 평양으로 갈 때는 내가 서울에서 조직한 「사민청련」 즉 「사회민주주의 통일 청년연합」의 대표 자격이었고 평양의 「사로청」 즉 「사회주의 로동 청년동맹」의 대표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연대를 하려는 목적이었다. 일본의 「조국의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한 남, 북 해외 청년 연합」(조평청련)을 조직 나는 남쪽 대표를 맡았다.

사로청 대표와 합의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조국의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이라야 한다. 둘은 조국 통일은 일체의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한 나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통일 조국인데 그렇게 주장하면 남쪽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 같아 평등과 자유를 부드럽게 절충한 사회민주주의로 시작해 서로간의 불신과 오해를 최소화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절대 평화 △화해 △상생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 적어도 30년 동안은 그 길을 보장 하자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내가 소설 「2015년」을 쓴 것인데 남북이 자유 총선거를 하자고 했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알테지만 자유 총선거 결과는 북쪽 인민과 남쪽의 진보연대가 보수연합을 누르고 이긴다. 득표 숫자까지 제시했다. 이 책은 평양에서 대남 일꾼들의 교재로 쓸 테니 300권을 보내달라고 해서 통일운동가 최선웅 북경 후원회장인 조선족 동포 리운수 화운무역 대표가 직접 평양에 갖다 줬다.
 
▲ 그러면 현재 통일운동진영이 준비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지요?
 
= 통일 운동 진영이 준비해야 할 일은 한 마디로 평화통일에 대한 꾸준한 공론화다. 절대 평화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없는 것이다. 역사의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나라 전체가 비참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문재인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무슨 통일에 대한 철학이나 구상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미국의 신 식민지로 그들의 한반도 정책을 따라간 것 밖에 없다.
 
▲ 통일은 우리 민족의 문제임과 동시에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한미관계는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지요?
 
= 「국제 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다만 국가 이익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망의 연속일 것이다. 적어도 자주 국가를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사주를 받은 놈들이 암살하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된다. 이제는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실천 할 때가 되었다. 사실 한참 늦었지만.

▲ 선생님은 어느 조직에 가담하지 않고 또 조직을 만들지도 않고 홀로 고군분투해 오신 것처럼 보입니다.

= 그렇치 않다. 나는 「사민청련」 즉 사회민주주의 통일 청년연합을 비밀리에 결성, 지금까지 조국의 평화 통일 운동에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노력할 거다.
 
▲ 선생님은 한국 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한국 전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미국이 유엔의 이름을 빌려 남한에서 오래 주둔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민족 반역자, 친일파들을 합법적으로 사면하고 그들을 마당쇠로 고용하여 점령군에게 협조하도록 온갖 기만전술, 암살 전술을 뒤에서 조종하기 위한 전쟁이다.
 
▲ 우리 현대사에서 선생님께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지요?
 
=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전사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꼭 기억해야 될 영웅들이다.

민족 지도자로 다섯 분만 골라 보라고 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추천 하고자 한다.
첫째, 김일성 주석
둘째, 여운형 선생
셋째, 신채호 선생
넷째, 김구 선생
다섯째, 한용운 선생
 
▲ 우리 민족의 통일이 세계사적 모순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세계사적 모순 해결이다. 
 
▲ 앞으로 통일과 관련하여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25세 미만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주와 평화를 실천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무료 강의를 하는 한편 청년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 선생님의 인생 역정에서 잊을 수 없는 일대전기가 되는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1967년 10월 30일, 일본 아끼다 해안에서 당 중앙 문화부가 파견한 공작선을 타고 청진을 거쳐 평양으로 간 일이다.

   
 

▲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문명이 대단한 것 같지만 하찮은 미생물에게도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즉 디스토피아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미래문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 나는 노자를 읽으며 큰 것을 깨우쳤다. 「자연은 오래간다. 자연이 오래가는 것은 자연이 자연을 위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이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파괴하면서 성장했어요. 자연의 균형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인간은 다 알지 못해다. 앞으로 발생할 각종 질병에 대한 대책은 자연을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것인데 욕심 많은 인간이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 한국정치는 여러 면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 우리나라에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라는 것은 없다. 굳이 있다면 권모술수, 사리사욕, 교활하고 악한 놈만 잘 사는 나라에 정치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 지금 부익부 빈익빈이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 자유 민주주의 자유경제를 채택한 나라가 반드시 겪는 암 같은 것이지요. 암은 생명 속에서 나고 자라는데 반드시 생명을 죽여요. 숙주였던 생명이 죽으니 암도 죽는 것이지요.

▲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요?
 
= 우리 민족은 우수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어요.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면 참으로 큰일을 할 사람들이에요. 1차 목표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과학 문화 국가로 발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 선생님의 꿈과 소망은 무엇인지요?
 
= 절대 평화를 확립, 민족의 화해 상생, 사회주의 통일 조국, 앞으로의 세계는 지구 시대를 마감하고 우주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과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에서 영양소를 만드는 일과 그것을 이루는데 통일 조국의 평화 과학자들이 큰 몫을 담당하기를 바라지요. 지구시대를 마감하고 우주시대를 활짝 여는 역사를 우리나라 학자들이 기록 했으면 좋겠어요.

▲ 선생님께서 오랜 옥중 생활을 하셨는데 21년이라는 기나긴 감옥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지요?
 
= 감옥 생활이란 1일이 여삼추라는 말의 뜻을 실감케 하고 배고픔을 견뎌야 해요. 현실적으로는 극한의 인내심이 필요하고 낙천적으로 성격이 바뀌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곳이에요. 미운 놈은 보아서 괴롭고 이쁜 놈은 못 보아서 괴로운 곳이기도 하다.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자기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할 때 역사 발전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눈으로 봐도 자기의 행동이 옳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견딜 수 있는 곳이다.
 
이상은 4월 22일에 이루어진 대담 내용이었다. 이후 6월 17일 다시한번 방문하여 악화된 남북관계와 조미(북미)관계의 전망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은 앞으로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날 것이며 미국은 북과 합의를 하여 북핵을 인정하고 서로 간에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협정을 맺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우리민족끼리는 절대 전쟁을 해서는 안되며 통일의 기본 전재인 첫째 절대평화, 둘째 화해상생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일생을 돌아보며 능력이 없어서 큰 일을 하진 못했지만 조국 앞에 떳떳한 삶을 사셨다고 회고했다. 
 

노세극 논설위원 press1@news-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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