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연합전선을 구축한 프랑스 노동조합 주도로 열린 9차 시위가 공공기관 방화, 상점파괴 등 격화되면서 이달말 예정된 영국 찰스 3세 국황의 프랑스 국빈방문이 취소됐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연금개혁 반대시위에 마크롱 정부의 하원 패싱이 기름을 부으면서 시위가 격화돼 일부 지역에서 시청사와 경찰서 화재가 발생하고 파리 상점 유리창이 깨지는 등 소요사태로 번지면서다. 찰스 3세의 방문시기에 10차시위가 예정되면서 양국 사이에 국빈방문 행사를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24일(현지시간) 애초 이달 26∼29일로 예정됐던 찰스 3세 국왕의 방문 일정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이날 배포한 성명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3월 28일 열린다며 찰스 국왕의 방문일정이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3월 28일 10차 시위를 열 예정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찰스 3세 국왕이 이날 오전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내려졌다고 엘리제궁이 전했다.
엘리제궁은 "우호적인 관계에 상응하는 조건 아래 찰스 3세 국왕을 환영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벨기에 유럽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브뤼셀을 방문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가 한창인 상황에서 우리가 국왕 부부에게 국빈 방문을 요청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시위를 주도하는 노동총동맹(CGT)은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파리에 도착할 때 공식 의전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찰스 3세 국왕 부부를 환영하는 레드 카펫도 깔지 않고, 연회장을 수놓을 깃발 장식 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찰스 3세 국왕의 방문은 초여름께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초여름께 함께 새로운 국빈 방문 일정을 잡는 방안을 (영국 측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 참가자 일부의 과격 행동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폭력이 설 자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찰스 3세 국왕의 첫 국빈방문국이 될 기회를 독일로 넘겨주게 됐다. 찰스 3세 국왕은 프랑스 방문은 취소됐지만, 독일 베를린 방문은 29∼31일 예정대로 진행된다.
중요한 국가 외교행사인 영국 국왕의 방문도 취소시킬 만큼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에 대해 저항은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100만명이 거리로 나서면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 표결 없이 연금 개혁 법안 처리 이후 첫번째 전국 단위 시위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시작된 이래 최대규모로 열렸다.
이번 9차 시위는 프랑스 주요 8개 노동조합 주도로 전국 250여개 지역에서 개최돼 정부 추산 108만9천명, 주최 측 추산 350만명이 참여했다.
시위 분위기가 격렬해지면서 보르도시청 건물이 불에 타는 등 시위가 소요사태로 번지는 양상이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쎄뉴스 방송에 출연해 전날 프랑스 전역에서 동시다발적 시위가 벌어져 시위대 457명이 경찰에 체포됐고 시위를 막던 경찰과 군경찰도 441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행진 도중 길거리에 쌓인 쓰레기와 신문 가판대 등에 불을 지르는 화재는 903건 발생했다.
최대 인파가 모인 파리에서는 정부 추산 11만명, 주최측 추산 80만명이 모였다.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바스티유 광장을 출발해 오페라 광장을 향해 가던 중 기물을 손상하거나 유리창을 깨뜨리기도 했다.
주요 관공서에 대한 공격행위도 있었다.
서부 로리앙에서는 경찰서, 낭트에서는 법원 등 공공기관을 겨냥한 공격도 벌어졌다. 특히 서남부 보르도에서는 시청에 누군가 불을 질러 정문과 그 주변이 까맣게 그을렸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이러한 사건·사고 소식을 보고받고 나서 트위터에 "시위하고, 반대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격한 폭력과 파손은 용납할 수 없다"며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6일 하원에서 연금 개혁법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커지자 투표를 하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헌법 제49조 3항'을 사용했다.
연금개혁법안은 지난 21일 야당이 발의한 총리 불신임안이 하원 표결에서 과반에 미치지 못하면서 부결되면서 발효됐다.
하원은 야당이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발의해 마크롱 정부의 시도를 막으려 했지만, 20일 열린 표결 결과 과반에서 9표가 모자라 부결되면서 연금개혁법안은 의회를 통과한 효력을 지닌다.
표결에 부친 첫 번째 불신임안에는 278명이 찬성해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하원 전체 의석은 577석이지만 현재 4석이 공석이라 불신임안을 가결하려면 의원 287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연금법안은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64세로 연장한다. 또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금수령까지 근로기간을 늘리는 대신 당근 조항도 넣었다.
올해 9월부터 최저 연금 상한을 최저 임금의 85%로 10%포인트 인상한다는 조항도 유지됐다. 일부 공공기관의 조기퇴직은 폐지한다.
노동시장에 일찍 진입하면 조기 퇴직을 할 수 있고, '워킹맘'에게 최대 5% 연금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공화당의 제안들도 들어가 있다.